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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한 페이지

사라진 스크린의 기억, 종로3가 단관극장 거리

by 벨키오 2026. 7. 12.

서울 지하철 1호선과 3호선이 만나는 종로3가역 근처를 걸어본 적이 있다면, 큰 사거리를 두고 자리 잡은 몇몇 건물을 무심코 지나쳤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시간에는 지금은 사라진 종로3가의 세 극장,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 그 흥망의 역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귀금속 상가나 평범한 빌딩으로 바뀐 이 자리들이, 한때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관객이 몰리던 영화관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습니다.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 이 세 이름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저 극장이 아니라, 청춘의 한 페이지였습니다. 오늘은 이 세 극장이 만들어낸 종로3가의 풍경과, 시대가 바뀌며 그 풍경이 어떻게 사라져 갔는지를 차분히 짚어보려 합니다.

사라진 스크린의 기억, 종로3가 단관극장 거리
사라진 스크린의 기억, 종로3가 단관극장 거리

사거리를 둘러싼 세 개의 극장, 흥행의 삼각지대

종로3가 사거리는 특이하게도 세 방향에 각각 큰 극장이 하나씩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북동쪽에는 1907년에 문을 연 단성사가 있었고, 북서쪽에는 1958년 서울키네마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이후 피카디리로 간판을 바꾼 극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길 건너 남쪽에는 1978년에 개관한 서울극장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세 극장이 걸어서 몇 분 거리 안에 삼각형 모양으로 모여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일대는 서울에서 가장 치열한 영화 흥행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한 영화가 여러 상영관에서 동시에 걸리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영화 한 편은 보통 극장 한 곳에서만 개봉하는 것이 관행이었고, 그래서 어떤 영화를 어느 극장이 가져가느냐가 큰 화제였습니다. 관객들은 종로3가에 나와서야 오늘 어떤 영화가 어느 극장에 걸렸는지 확인하고, 마음에 드는 영화를 골라 표를 끊었습니다. 인기 있는 영화가 개봉하는 날이면 극장 앞으로 늘어선 줄이 종묘 근처까지 이어지는 일도 흔했다고 합니다. 표를 구하지 못해 웃돈을 주고 암표를 사는 일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이 세 극장 주변으로는 자연스럽게 다방과 분식집, 음반 가게 같은 상점들이 늘어섰고,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이나 끝난 후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인사동과 낙원상가, 청계천이 가까이 있었던 덕분에 종로3가 일대는 영화뿐 아니라 문화 전반을 즐기는 공간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시기 종로3가를 거쳐 가지 않은 영화가 드물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이곳은 한국 영화 흥행의 중심축이었습니다.

 

당시 영화를 개봉하는 제작사나 배급사 입장에서도 종로3가의 어느 극장에서 영화를 트느냐는 무척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세 극장 각각이 오랜 세월 쌓아 올린 단골 관객층과 상징성이 있었기 때문에, 흥행이 기대되는 작품일수록 이 삼각지대의 극장을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신문 지면에는 어느 영화가 어느 극장에서 개봉했는지가 흥행 성적과 함께 자주 보도되었고, 외국 배우나 감독이 내한할 때도 이 세 극장이 행사장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만큼 종로3가의 극장들은 단순히 영화를 트는 공간을 넘어, 한국 영화 산업 전체가 주목하는 무대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이 걸어온 서로 다른 길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극장은 단성사였습니다. 1907년에 문을 열어 한국 영화관의 뿌리와도 같은 존재였고, 주변에 중고등학교가 많아 학생 관객이 특히 많이 찾는 곳이었습니다. 시대가 흘러 2000년대 들어 단성사도 멀티플렉스 형태로 건물을 새로 지어 여러 개의 상영관을 갖췄지만,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는 일을 겪었습니다. 이후 다른 이름으로 잠시 다시 문을 열기도 했으나 오래 버티지 못했고, 결국 2015년 무렵 영화관으로서의 역사를 완전히 마감했습니다. 지금 그 자리에는 귀금속을 다루는 상가 건물이 들어서 있고, 건물 한쪽 구석에 예전 단성사를 기억하는 작은 표지석만 남아 있습니다.

 

피카디리는 1958년 서울키네마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몇 년 뒤 피카디리로 간판을 바꾼 극장입니다. 영화 '접속'의 배경으로 등장할 만큼 대중에게 익숙한 장소였고, 극장 앞 광장에는 유명 영화인들의 손도장을 새긴 판이 놓여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주었습니다. 세 극장 가운데 피카디리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결단을 내렸습니다. 2001년 기존 건물을 허물고 2004년에 여러 개의 상영관을 갖춘 멀티플렉스로 다시 문을 열었고, 이후 대기업 영화관 체인에 상영관을 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을 이어가면서 지금까지도 같은 자리에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극장이 아니라, 대형 체인의 한 지점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세 극장 가운데 가장 늦게까지 옛 이름과 운영 방식을 지킨 곳은 서울극장이었습니다. 1978년 영화 제작사였던 합동영화주식회사가 세운 이 극장은 1997년에 기존 건물 옆에 새 건물을 세우면서 상영관을 일곱 개까지 늘려, 다가올 멀티플렉스 시대에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그 상징성을 인정받아 2013년에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의 확산과 뒤이은 코로나19 사태로 관객이 급격히 줄면서 경영이 어려워졌고, 42년이 넘는 역사를 뒤로한 채 2021년 8월 31일 마지막 상영을 끝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폐관을 앞둔 마지막 몇 주 동안에는 관객들에게 무료로 영화를 보여주는 상영회가 열렸고, 오래된 단골 관객들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극장을 찾았습니다. 극장 앞에서 수십 년째 노점을 지켜온 상인들도 매출보다는 아쉬움을 먼저 이야기했고, 오랜만에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예전에 자주 보던 좌석에 앉아 옛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서울극장이 문을 닫은 뒤에도 극장 건물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한동안 정해지지 않았는데, 이는 하나의 상영관이 사라지는 것을 넘어 한 시대를 대표하던 문화 공간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남았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멀티플렉스 시대와 함께 저문 단관극장의 풍경

세 극장의 운명이 갈리게 된 배경에는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멀티플렉스 극장의 등장이 있었습니다. 한 건물 안에 여러 개의 상영관을 두고 다양한 영화를 동시에 상영하는 방식은 관객에게 훨씬 편리한 선택지를 제공했습니다. 여기에 넓은 주차 공간과 쇼핑, 식사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대형 상영관들이 도심 곳곳과 새로 개발된 지역에 들어서면서, 한 편의 영화만 상영하던 예전 방식의 단관극장은 점점 관객의 발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성사와 피카디리, 서울극장 역시 이러한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상영관 수를 늘리고 건물을 새로 짓는 시도가 이어졌지만, 이미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 계열 영화관 체인이 시장을 빠르게 장악한 뒤였습니다. 결국 피카디리는 대형 체인에 편입되는 방식으로 살아남는 길을 택했고, 단성사는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독립적인 운영 방식을 가장 오래 지켰던 서울극장마저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충격 앞에서 결국 문을 닫으면서, 종로3가를 지키던 삼각형 극장가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지금 종로3가 사거리를 걷다 보면, 예전 극장이 있던 자리에는 각기 다른 용도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그 시절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단성사가 있던 자리에는 귀금속을 취급하는 상가 건물이 들어섰고, 서울극장이 있던 자리 역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며 한동안 조용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오직 피카디리만이 대형 체인의 이름을 빌려 같은 자리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독립적인 간판을 걸고 관객을 맞이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 표를 구하지 못해 극장 사이를 옮겨 다니던 기억, 친구와 함께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줄을 서던 기억은 사라진 건물과 함께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남아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영화를 보는 방식도, 극장이 있는 풍경도 크게 달라졌지만, 한 시절 종로3가가 품고 있던 활기와 설렘만큼은 그 거리를 걸었던 이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입니다. 멀티플렉스가 익숙해진 지금, 가끔은 한 편의 영화만을 위해 온 도시가 들썩이던 그 시절의 풍경을 떠올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