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콘크리트 구조물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살려서 공원을 만든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오늘은 콘크리트 정수장이 생태공원으로 변하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회색빛 콘크리트 벽 사이로 담쟁이덩굴이 자라나고, 물을 걸러내던 시설에는 이제 수생식물이 자란다면 그곳은 더 이상 삭막한 산업 시설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은 한강 한가운데, 한때 수돗물을 만들던 정수장이 지금은 서울을 대표하는 생태공원으로 다시 태어난 선유도공원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신선이 노닐던 봉우리에서 콘크리트 정수장이 되기까지
선유도는 원래 섬이 아니라 한강 가운데 솟아 있던 작은 봉우리였습니다. 이름도 신선이 노닐던 봉우리라는 뜻의 선유봉에서 나왔는데, 조선 시대에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이름이 나서 많은 시인과 화가들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은 선유봉을 배경으로 그림을 여러 점 남겼고, 왕위를 세종에게 물려준 뒤 여러 곳을 유람하며 지냈다는 양녕대군도 이곳에 정자를 짓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중국에서 온 사신들조차 이곳의 풍경에 감탄해 시를 남겼다고 하니, 그만큼 선유봉은 한강에서 손꼽히는 명소였던 셈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강을 따라 배를 띄우고 봉우리 주변을 유람하며 풍류를 즐겼고, 이런 풍경을 소재로 삼은 그림과 시가 여러 편 전해 내려오는 것을 보면 선유봉이 단순히 이름난 명소를 넘어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장소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풍경은 시간이 흐르며 크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선유봉의 옛 모습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이 무렵 홍수로 한강 제방이 무너지는 일이 있었는데, 그 제방을 다시 쌓는 데 선유봉의 바위와 흙이 쓰이면서 봉우리가 서서히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양화대교가 놓이고 1968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강을 개발하는 공사가 진행되면서 봉우리는 계속 깎여 나가 지금과 같은 작은 섬의 형태로 남게 되었습니다. 한때 봉우리였던 곳이 강 한가운데 떠 있는 섬으로 완전히 바뀐 셈입니다. 그리고 1978년, 이 섬에는 서울 서남부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이 들어섰습니다. 이후 2000년까지 22년 동안 이 정수장은 서울 시민들이 마시고 쓰는 물을 정화하는 중요한 시설로 쉼 없이 가동되었습니다. 이 시기 선유도는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산업 시설이었고, 강을 사이에 두고 바라만 볼 수 있는 섬이었습니다. 매일 많은 양의 한강 물이 이 정수장을 거쳐 침전과 여과 과정을 통해 깨끗한 수돗물로 바뀌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물은 관로를 따라 서울 서남부 지역 가정과 건물로 공급되었습니다. 신선이 노닐던 풍경 좋은 봉우리가, 회색 콘크리트로 뒤덮인 산업 시설로 완전히 탈바꿈한 시기였습니다.
정수장의 흔적을 그대로 남긴 국내 최초의 환경재생 생태공원
시간이 흘러 정수 시설이 강북 정수사업소로 통합되면서, 선유도 정수장은 2000년 12월 문을 닫았습니다. 서울시는 정수장 문을 닫으면서 이 부지를 그냥 철거하는 대신 공원으로 다시 살리는 방침을 세웠고, 곧바로 공사에 들어가 2002년 4월, 지금의 선유도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되었습니다. 이때 눈여겨볼 점은, 기존 정수장 시설을 허물고 새로 짓는 방식이 아니라 옛 구조물을 최대한 그대로 살려서 공원으로 바꾸었다는 점입니다. 산업화의 흔적을 지우기보다는 오히려 그 흔적을 남겨서 시민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조성된 공원은 국내에서 이곳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선유도공원은 흔히 국내 최초의 환경재생 생태공원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도 옛 시설을 최대한 살리려는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녹색기둥의 정원을 만들 때 처음에는 새로 나무를 심어 녹지를 조성할 계획이었는데, 콘크리트 기둥에 남아 있던 물때 자국을 그대로 살리는 편이 낫다는 판단에 따라 나무 대신 담쟁이덩굴을 기둥에 심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관리사무소로 쓰는 건물 역시 새로 짓지 않고 기존 정수장 건물을 그대로 활용했으며, 22년 넘게 정수장에서 실제로 쓰이던 빗물 방류 밸브 같은 옛 설비도 철거하지 않고 공원 곳곳에 전시물로 남겨 두었습니다. 이렇게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까지 옛 흔적을 살려 둔 덕분에, 지금의 선유도공원은 어느 한 구석을 걷더라도 정수장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정수장 시절 물을 실어 나르던 송수 펌프실 건물은 지금 한강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 주는 전시 공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2층은 조용히 쉬어 갈 수 있는 사색의 공간으로, 1층은 기획 전시를 여는 공간으로, 지하층은 영상을 상영하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어 옛 산업 시설이 문화 공간으로 바뀐 모습을 잘 보여 줍니다. 정수된 물을 저장하던 정수지는 콘크리트 지붕만 걷어 내고 기둥은 그대로 남겨 두었는데, 세월이 흐르며 그 기둥마다 담쟁이덩굴이 뒤덮이면서 지금은 녹색기둥의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공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진 명소가 되었습니다. 물을 가라앉혀 불순물을 걸러내던 침전지 역시 구조물을 그대로 살려 두어서, 지금은 콘크리트 기둥 사이로 식물이 자라난 시간의 정원이라는 독특한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공중에 떠 있는 나무 데크길이 놓여 있어, 발밑으로 옛 침전지의 구조를 내려다보며 걸을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불순물을 제거하던 침전지와 여과지 자리는 수생식물이 자라며 한강 물을 정화하는 수질정화원으로, 물을 걸러내던 시설 자리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환경 물놀이터로 바뀌었습니다. 옛 정수장의 기능 하나하나가, 지금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공원의 일부가 되어 있는 셈입니다.
지금의 선유도공원, 한강 위 산책과 사색의 공간
이렇게 조성된 선유도공원의 전체 면적은 약 11만 제곱미터에 이르며, 공원 안에는 이야기관과 녹색기둥의 정원, 시간의 정원, 수질정화원 말고도 온실과 환경 교실, 환경 놀이마당, 200석 규모의 작은 야외 극장, 카페 같은 시설이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온실 안에 놓인 스테인리스 수로 역시 옛 침전지의 수로를 그대로 재활용한 것이어서, 새로 지은 시설 하나하나에도 정수장 시절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정수장에서 약품을 넣어 불순물을 가라앉히던 혼화지와 농축조 자리는 지금은 환경 교실과 환경 놀이마당으로 쓰이며 아이들이 자연을 배우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공원을 찾은 사람들은 옛 정수장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한강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고,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로 자라난 식물들을 보면서 시간이 지나며 공간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도 함께 느끼게 됩니다. 이런 독특한 조성 방식을 인정받아 선유도공원은 미국조경가협회로부터 디자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선유도공원은 한강시민공원 양화지구와 선유교라는 다리로 이어져 있는데, 이 다리는 한강에 놓인 여러 다리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만 건널 수 있는 보행자 전용 다리입니다. 한국과 프랑스가 수교를 맺은 지 10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프랑스 건축가가 설계했으며, 직선과 타원이 서로 어우러지는 조형미를 지니고 있어 다리 자체도 하나의 볼거리로 꼽힙니다. 다리 위를 걸으며 강물과 공원 전체를 함께 내려다볼 수 있어, 공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산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하철 9호선 선유도역에서 다리를 건너거나, 당산역 쪽 양화대교를 통해서도 공원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때 서울 시민들에게 마실 물을 만들어 주던 이 작은 섬은, 이제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로 자연이 스며든 모습 그대로 서울 시민들에게 쉼과 사색의 공간을 내어 주고 있습니다. 사라진 것을 완전히 지우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쓰임새를 얹은 방식이야말로, 선유도공원이 지금까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서울 곳곳에서 낡은 산업 시설을 허물지 않고 공원이나 문화 공간으로 되살리는 사례들이 이어졌는데, 그 시작점이 바로 이 작은 섬 선유도였다는 점도 함께 기억할 만한 사실입니다. 언젠가 한강을 찾을 일이 있다면, 다리 하나만 건너면 닿는 이 작은 섬에서 옛 정수장의 흔적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을 천천히 걸어 보는 것도 좋은 하루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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