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울터미널은 1980년대 서울이 동쪽으로 팽창하던 순간에 태어난 교통의 관문입니다. 오늘은 동서울터미널이 강원 지역과 영남 지역 교통과 군인들의 성지가 된 이유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동서울터미널은 단순히 지방행 버스가 출발하는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강원 산간과 경북 북부, 서울 동북권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었고, 휴가와 복귀를 반복하는 군 장병에게는 집과 부대를 잇는 중간 기착지가 되었습니다. 핵심은 위치였습니다. 도심 외곽의 구의동, 지하철 2호선 강변역, 중부고속도로로 이어지는 도로망이 한 곳에서 만났습니다. 동서울터미널의 역사는 건립 배경, 군인 중심의 이용 문화, 복합 교통시설로의 전환이라는 세 축으로 읽어야 합니다.

도심의 버스를 동쪽으로 옮긴 동서울터미널의 탄생
동서울터미널을 만든 힘은 여행 수요보다 서울의 팽창이었습니다. 서울시는 도심 교통 혼잡을 줄이고 동부 지역 주민의 시외버스 접근성을 높일 새로운 터미널이 필요했습니다. 구의동 부지에서는 1987년 공사가 시작됐으며, 종합터미널 건물은 1990년에 완공됐습니다. 짧은 변화가 아닙니다. 한강 변 외곽 지역이던 구의동이 전국 교통망의 출입구로 바뀐 사건이었습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변역이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점도 결정적이었습니다. 승객은 서울역이나 시청을 거치지 않고 지하철에서 내려 곧바로 시외버스로 갈아탈 수 있었습니다.
시설은 완공 전후부터 빠르게 체계를 갖췄습니다. 운영사는 1989년 9월 설립됐고, 터미널은 1990년 7월 전국 버스터미널 가운데 처음으로 승차권 전산 발매를 시작했습니다. 창구 직원이 종이 장부와 좌석표를 대조하던 시기에 전산 시스템을 들여온 것입니다. 겉모습은 투박했지만 운영 방식은 앞섰습니다. 여기서 통념이 깨집니다. 동서울터미널은 낡은 지방 터미널의 확대판이 아니라, 급증하는 장거리 이동을 처리하기 위해 만든 당시의 신형 교통시설이었습니다.
노선의 방향도 역할을 분명하게 만들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은 경기도와 강원도를 중심으로 경상도·충청도·전라도까지 버스를 보냈으며, 한때 하루 1,200대 이상이 오가는 전국 단위 터미널로 성장했습니다. 서울 남쪽의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 주요 대도시를 잇는 간선망에 강했다면, 동서울은 산간 도시와 중소 지역을 촘촘히 연결했습니다. 목적지는 도시 이름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처럼 군부대가 집중된 접경 지역까지 버스가 들어갔습니다. 화려한 중심보다 멀리 떨어진 생활권을 연결했다는 점이 동서울터미널의 경쟁력이었습니다.
강원·영남 노선이 만든 군인들의 환승 거점
동서울터미널을 군인의 성지로 만든 것은 군부대가 아니라 노선 구조였습니다. 강원도 최전방에서 휴가를 나온 장병이 부산·대구·창원 같은 영남 지역으로 가려면 직행버스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먼저 원통·인제·양구·화천·철원 등에서 동서울행 버스를 탄 뒤, 터미널이나 수도권 철도망에서 다시 고향 방향 교통편으로 갈아타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동의 중심은 환승이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은 강원 산간과 영남권 사이에 놓인 거대한 연결 마디가 된 셈입니다.
현장의 풍경은 노선표보다 선명했습니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전투복 차림의 장병들이 강변역 출구와 매표소, 분식점, 공중전화 주변을 채웠습니다. 커다란 군용 가방을 발밑에 내려놓고 복귀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도 흔했습니다. 2017년 보도 당시 동서울터미널은 고속·시외버스 130여 개 노선을 운영했고 하루 평균 이용객은 약 3만1,100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주말에는 나들이객과 군 장병이 겹치면서 체감 혼잡도가 더 높아졌습니다. 군복이 많이 보였던 이유는 감성적 상징 때문이 아니라 특정 지역으로 향하는 교통편이 집중됐기 때문입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군인들이 모여서 터미널이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강원 접경 지역 노선이 먼저 집중됐기 때문에 군인들이 모였습니다. 철원 와수리 같은 읍·면 지역은 물론 군부대 인근 정류장을 잇는 노선까지 동서울을 향했습니다. 강원도에서 영남이나 호남으로 바로 이동하기 어려운 장병에게 서울 동쪽의 이 터미널은 사실상 전국 환승센터였습니다. 휴가 첫날에는 사회로 나오는 문이었고, 마지막 날에는 부대로 돌아가는 경계선이었습니다. 같은 공간이 출발의 해방감과 복귀의 긴장을 동시에 품었던 이유입니다.
상권도 이 흐름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터미널 주변에는 짧은 시간에 식사를 마칠 수 있는 분식점, 햄버거 매장, 편의점, 약국과 카페가 자리 잡았습니다. 장병에게 필요한 것은 고급 쇼핑시설보다 빠른 식사와 휴식, 충전, 생필품 구매였습니다. 터미널 상권은 체류 시간이 짧은 승객에게 맞춰졌습니다. 다만 군인 중심의 이미지는 터미널의 일부일 뿐입니다. 통근자와 대학생, 강원 지역 주민, 주말 등산객도 같은 노선을 이용했으며, 이들의 반복 이동이 연중 수요를 받쳤습니다.
낡은 성지를 광역교통허브로 바꾸는 다음 단계
동서울터미널의 약점은 성공한 노선망을 시설이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버스와 승객은 늘었지만 건물은 좁았고 승하차 공간과 주변 도로는 혼잡했습니다. 서울시는 2002년부터 시설 현대화를 추진했으나 이해관계 조정과 사업성 문제로 계획이 여러 차례 늦어졌습니다. 시설 노후화는 추억으로 포장할 문제가 아닙니다. 매연과 소음, 보행 동선 충돌, 강변북로 주변 정체는 이용객과 주민 모두가 부담한 비용이었습니다. 오래됐다는 사실과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은 구분해야 합니다.
현재 동서울터미널은 하루 110여 개 노선과 평균 1,000대가 넘는 버스를 처리하는 동북권 교통 관문으로 평가됩니다. 서울시는 터미널을 지하 7층에서 지상 39층 규모의 교통·업무·판매·문화 복합시설로 재편하고, 2026년 말 착공과 2031년 완공을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버스 승하차장은 지하로 옮기고 강변북로와 터미널을 직접 연결하는 구상도 포함됐습니다. 지상 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주면서 버스가 주변 일반도로에 미치는 부담을 낮추려는 설계입니다.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환승 품질입니다.
앞으로 3~5년은 동서울터미널의 정체성이 가장 크게 흔들리는 시기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임시터미널 운영과 공사 동선 조정이 시작되면 승객은 기존보다 긴 이동 거리와 노선 변경을 겪을 수 있습니다. 강원 산간 노선은 철도만으로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에 버스터미널 기능 자체는 남아야 합니다. 반면 모바일 예매와 자가용 이용 확대는 매표소·대합실 중심의 낡은 운영 방식을 약화시킬 것입니다. 새 시설은 쇼핑몰의 크기보다 군 장병과 고령 승객이 짐을 들고도 쉽게 갈아탈 수 있는 동선을 먼저 확보해야 합니다.
개발의 그늘도 분명합니다. 39층 복합시설과 약 36만㎡ 규모의 개발은 지역 상권을 키울 수 있지만 임대료 상승과 기존 영세 점포의 이탈을 부를 수 있습니다. 오래된 식당과 매점이 모두 사라지면 건물은 새로워져도 터미널 특유의 생활 문화는 끊깁니다. 승자는 대형 사업자만이어서는 안 됩니다. 교통 효율과 지역 기억을 함께 남기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동서울터미널의 가치는 외관이 아니라 강원 산간의 작은 정류장까지 이어졌던 연결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동서울터미널은 1980년대 서울의 외연 확장과 전국 도로망의 성장이 만난 결과입니다. 1987년 시작된 건설, 1990년 완공과 전산 발매, 강원·영남권을 잇는 노선은 구의동을 서울 동쪽의 관문으로 바꿨습니다. 군인들의 성지라는 별칭도 우연히 생기지 않았습니다. 강원 접경 지역 장병이 전국으로 이동하려면 동서울터미널을 거치는 편이 가장 현실적이었고, 그 반복된 이동이 공간의 기억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낡은 건물은 광역교통허브로 바뀌지만 지켜야 할 핵심은 선명합니다. 좋은 터미널은 거대한 건물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사람의 귀향과 복귀를 끊기지 않게 연결하는 시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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