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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한 페이지

재개발로 사라진 피맛골의 역사

by 도시사관 2026. 8. 5.

피맛골은 종로의 화려한 대로 뒤에서 수백 년 동안 서민의 식사와 휴식을 책임진 골목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우회로는 국밥집과 선술집이 모인 생활공간으로 바뀌었지만, 1980년대부터 시작된 도심 재개발은 길과 점포를 하나의 기억으로만 남겼습니다. 오늘은 종로 뒷골목을 채우던 서민 식당가, 재개발로 사라진 피맛골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오늘날 건물 안에 복원된 통로와 옛 식당 몇 곳이 이름을 잇고 있으나, 낮은 임대료와 작은 필지가 만든 골목의 생태계까지 되살아난 것은 아닙니다. 피맛골의 시작과 전성기, 철거를 앞당긴 개발 구조, 앞으로 3~5년 동안 남은 구간이 지켜야 할 가치를 차례로 짚습니다.

종로 뒷골목을 채우던 서민 식당가, 재개발로 사라진 피맛골의 역사
종로 뒷골목을 채우던 서민 식당가, 재개발로 사라진 피맛골의 역사

피맛골을 서민 식당가로 만든 좁은 우회로

피맛골의 ‘피마’는 한자로 말을 피한다는 뜻의 ‘避馬’입니다. 피맛길은 종로와 나란히 뻗은 좁은 이면도로를 가리키며, 피맛골은 그 길과 양쪽의 가옥·점포를 함께 부르는 이름입니다. 2009년 대한지리학회지에 실린 연구는 이 길이 단순히 서민이 고관의 말을 피해 숨던 통로라기보다, 하급 관리가 종로에서 상관을 만났을 때 자신의 말을 돌려 신속하게 이동하던 우회로였다고 설명합니다. 익숙한 유래부터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골목의 뿌리는 조선 전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종로1가에서 종로 6가까지 이어진 길에는 통행객을 상대로 국밥집, 선술집, 색주가와 작은 상점이 자리를 잡았으며,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 어려울 만큼 좁은 구간도 있었습니다. 큰길의 높은 지대와 달리 피맛골에서는 적은 자본으로 점포를 열 수 있었고, 손님은 짧은 시간에 값싼 끼니와 술을 해결했습니다. 골목을 키운 힘은 낭만이 아니라 접근성과 낮은 영업비용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청진동과 공평동 일대에는 해장국, 빈대떡, 생선구이, 낙지볶음 등을 파는 식당이 밀집했습니다. 낮에는 회사원과 상인이 식사를 했고, 저녁에는 막걸리 주전자와 연탄불 냄새가 골목을 채웠습니다. 청일집, 청진옥, 미진처럼 이름이 알려진 식당도 등장했지만, 피맛골의 중심은 유명 점포 몇 곳이 아니라 작은 가게가 촘촘히 연결된 구조였습니다. 이것이 피맛골을 하나의 식당이 아닌 서민 식당가로 만든 조건입니다.

피맛골 재개발이 길보다 먼저 지운 생태계

피맛골을 무너뜨린 것은 낡은 건물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서울시는 청진동 166번지 일대를 1983년 도심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했으며, 사업은 상인과 문화계의 반발 속에서 여러 차례 지연됐습니다. 2004년 청진구역 제6지구에는 약 2,619평 부지에 지하 7층, 지상 20층 규모의 오피스텔을 짓는 계획이 추진됐습니다. 작은 필지 여러 개를 합쳐 대형 업무시설을 세우는 방식이 골목의 운명을 바꿨습니다.

 

변화는 2000년대 후반에 눈앞의 철거로 나타났습니다. 2009년 당시 전체 피맛길 약 3.1㎞ 가운데 교보빌딩에서 종로 2가로 이어지는 0.9㎞ 구간에서는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고층 건물을 세우는 사업이 끝났거나 진행 중이었습니다. 길의 폭과 방향을 일부 남기더라도, 소규모 건물과 저렴한 점포가 사라지면 기존 상인은 같은 자리에서 영업하기 어렵습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재개발 사업자는 옛 분위기를 재현한 식당가와 보행통로를 조성했고 일부 노포도 새 건물 1층으로 옮겼습니다. 반면 새 상가의 임대료와 관리비를 감당하지 못한 영세 점포는 돌아오지 못했으며, 골목은 자연스럽게 생긴 생활공간에서 계획된 상업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새 건물은 안전성과 편의성을 높였지만 수십 개의 소규모 업종을 한 건물의 운영 논리 안에 넣었습니다. 재개발의 손실은 건물 수보다 관계의 단절에서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남은 피맛골이 앞으로 지켜야 할 것

피맛골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의미는 크게 줄었습니다. 종로 1가 일부에는 2010년 도로명으로 고시된 약 318m의 피마길이 남아 있으며, 상당 구간은 독립된 골목이라기보다 대형 건물 내부와 사이를 잇는 보행통로처럼 보입니다. 오래된 간판과 노포 몇 곳은 과거를 증언하지만, 새로 꾸민 조형물만으로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장소성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름의 보존과 공간의 보존은 다릅니다.

 

개발을 전면 부정하는 접근도 현실적인 해답은 아닙니다. 노후 건물의 화재 위험과 열악한 위생시설을 개선하고, 보행로를 확보하며, 도심 업무 기능을 유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2019년 공평 15·16 지구 계획에서 철거형 한 가지 방식 대신 일반정비형, 소단위 관리형, 보전정비형을 섞고 건물 높이를 구역에 따라 40m 또는 70m 이하로 제한하는 구상을 마련했습니다. 획일적 철거의 문제를 행정이 뒤늦게 인정한 변화입니다.

 

향후 3~5년에는 남은 길의 모양보다 골목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공공기관은 오래된 필지 경계와 보행 동선을 기록하고, 건물주는 대형 브랜드뿐 아니라 소규모 식당이 버틸 수 있는 면적과 임대 조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음식점의 창업 연도, 대표 메뉴, 이전 위치를 현장 안내판과 디지털 지도에 함께 기록하면 방문객은 복제품이 아닌 장소의 변화를 읽을 수 있습니다. 피맛골의 미래는 과거를 그대로 꾸미는 데 있지 않고, 작은 가게가 다시 들어올 틈을 남기는 데 있습니다.

 

피맛골은 조선 전기 종로의 위계적인 통행 질서에서 태어나 값싼 음식과 술을 파는 서민 식당가로 성장했습니다. 1983년 재개발구역 지정과 2000년대 대규모 철거는 낡은 건물만 없앤 것이 아니라 좁은 필지, 낮은 비용, 단골 관계가 맞물린 상권까지 해체했습니다. 오늘날 남은 피맛골은 깨끗한 보행통로와 몇몇 노포를 갖췄지만, 원래 골목이 지녔던 경제적 다양성은 되찾지 못했습니다. 도시의 역사는 오래된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살아남지 않으며, 작은 생활이 머물 자리를 남길 때 비로소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