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억 한 페이지

삼청동천이 삼청동길로 바뀐 과정

by 도시사관 2026. 8. 3.

삼청동천은 사라진 하천이 아니라 삼청동길의 아스팔트 아래로 밀려난 물길입니다. 오늘은 삼청동천이 삼청동길로 바뀐 과정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백악산 동쪽 골짜기에서 시작한 물은 경복궁 동쪽을 지나 혜정교 부근에서 청계천으로 합류했지만,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시대의 도로 확장 과정에서 차례로 덮였습니다. 오늘날 삼청로와 종로 1길의 완만한 굴곡은 자연 지형을 지운 흔적이 아니라 옛 하천의 방향을 도로가 이어받은 결과입니다. 길이 물길을 계승했습니다. 삼청동천의 기원과 복개 과정, 복개도로가 상업·문화 거리로 변한 배경, 향후 복원이 남길 의미를 차례로 짚어야 현재의 삼청동길이 제대로 보입니다.

삼청동천이 삼청동길로 바뀐 과정과 아스팔트 아래 물길
삼청동천이 삼청동길로 바뀐 과정과 아스팔트 아래 물길

삼청동천을 도성의 중심 물길로 만든 위치

삼청동천은 경복궁 담장 옆을 흐르던 변두리 개천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 하천을 백악산 동쪽에서 발원해 경복궁 동쪽과 혜정교를 거쳐 청계천으로 들어가는 주요 지류로 설명하며, 백악산 서쪽의 백운동천과 함께 도성 중심부의 배수 체계를 구성했다고 밝힙니다. 물은 삼청동 계곡과 소격동, 사간동, 중학동을 남쪽으로 관통했습니다. 도성의 혈관이었습니다.

 

중학동 구간에서 삼청동천을 중학천이라고 부른 이유도 주변에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중학이 자리했기 때문입니다. 물길은 경복궁 동십자각 건너편을 지나 오늘날 종로 1길 방향으로 내려갔고, 종로에서는 조선시대 다리인 혜정교 아래를 통과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혜정교의 이름을 복청교로 바꾸었으며, 복개 과정에서 사라진 복청교 표지석은 이후 탑골공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이 그 표지석을 보관합니다.

 

여기서 통념이 깨집니다. 삼청동천은 경치 좋은 계곡만 만든 것이 아니라 궁궐과 관청, 주거지를 연결하며 빗물과 생활하수를 청계천으로 내보내는 기반시설 역할을 맡았습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뒤에도 팔판동·삼청동·소격동·사간동 주변의 골목은 물길을 따라 형성된 이전 지형을 유지했습니다. 좁고 굽은 현재의 도로가 직선으로 정비되지 않은 이유입니다. 자연의 선이 남았습니다.

복개도로 삼청동길을 만든 도시의 선택

삼청동천을 덮은 결정적 동력은 악취보다 자동차와 도로였습니다. 하류인 광화문 일대에서는 1930년대 중반 관공서 거리의 미관을 정비하고 도로 공간을 넓히기 위한 하수 개수 공사가 먼저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전쟁을 거친 뒤 1957년을 전후해 삼청동 구간의 물길 위에 지상 도로가 놓였고, 1960년대 중반에는 미국대사관과 광화문우체국 사이 중학천 구간까지 복개가 확대되었습니다. 한 번에 사라진 하천이 아니었습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하천 오염이 심해져 복개했다는 설명만으로는 당시 도시 구조를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서울시는 늘어나는 차량을 통과시킬 도로가 필요했고, 이미 도심을 가로지르던 하천 부지를 새로운 토지 매입 없이 활용했습니다. 물길을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넣으면 배수 기능을 남기면서 지상에는 차도와 보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복개는 위생 사업인 동시에 값싼 도로 확보 방식이었던 셈입니다.

도로가 생기자 공간의 성격도 바뀌었습니다. 물가에 붙어 있던 주택과 생활 골목은 차량이 오가는 가로변으로 편입되었고, 삼청동길은 경복궁·북촌·청와대 주변을 연결하는 이동축이 되었습니다. 1974년에 제작된 서울시 측량원도에도 삼청동 필지와 도로 경계가 기록되어 있어 복개 이후 토지 구조가 행정적으로 굳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로는 편리했습니다. 반면 빗물이 스며들 공간과 하천 생태계, 계곡을 바라보던 일상 풍경은 함께 줄었습니다.

삼청동길의 번영 뒤에서 다시 드러난 물길

삼청동길의 현재 가치는 물길을 지운 뒤 생긴 도로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경복궁 동쪽 돌담, 북촌 한옥, 소격동의 미술관과 상점이 복개도로를 따라 연결되면서 이곳은 생활도로에서 문화 관광 거리로 전환되었습니다. 서울 공식 관광 자료는 삼청동을 한옥과 현대식 건물, 화랑과 박물관이 공존하는 거리로 소개합니다. 옛 하천의 완만한 곡선이 걷기 좋은 가로의 뼈대가 된 셈입니다.

성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폭이 좁은 도로에 차량과 보행자가 함께 몰리면서 보행 공간이 끊기고, 관광 상권의 임대료 변화는 오래된 생활 점포와 주민 공간을 밀어내는 압력으로 작용했습니다. 삼청동 행정동의 면적은 1.49제곱킬로미터이며 2022년 8월 인구는 2,384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유명 관광지의 외형과 작은 주거지의 생활 조건이 같은 길에서 충돌합니다. 숫자가 말하는 핵심입니다.

 

앞으로 3~5년 동안 삼청동천 복원은 전 구간의 콘크리트를 걷어내는 방식보다 일부 물길을 지상에 드러내는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큽니다. 서울시는 민선 8기 사업으로 청와대 주변 옛 물길 복원을 추진했지만, 2025년 계획을 중학동광장과 연계한 삼청동천 일부 복원 실시설계 중심으로 조정했습니다. 교통 유지, 지하 매설물, 홍수 대응을 고려하면 전면 개방보다 상징 수로와 녹지, 보행 공간을 결합하는 방안이 현실적입니다. 복원은 장식이 아닙니다.

 

삼청동천은 백악산 동쪽의 물을 청계천으로 보내던 자연 하천이었고, 1930년대 하류 정비와 1950~1960년대 복개를 거치며 삼청동길과 종로 1길의 지하 수로로 바뀌었습니다. 그 위에 놓인 복개도로는 자동차 이동을 돕고 삼청동 상권과 문화 거리를 성장시켰지만, 하천 경관과 생태 공간을 도시에서 지웠습니다. 현재 추진되는 일부 복원은 과거의 물길을 그대로 재현하는 사업이라기보다 도로·관광·주거·치수 기능을 다시 조정하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삼청동천의 역사는 도시가 자연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긴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