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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인쇄골목이 멈춘 이유와 장인들의 이주 비화

by 벨키오 2026. 7. 20.

을지로 인쇄골목은 종이 냄새와 재단기 소리만으로 설명되는 옛 풍경이 아닙니다. 이번 시간에는 을지로 인쇄골몰이 멈춘 이유와 장인들의 이주 비화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활자 제작, 영화 전단, 상업 인쇄를 거쳐 성장한 이곳은 기획·제판·인쇄·코팅·제본이 가까운 거리에서 연결되는 도심 제조업의 집적지였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에 따른 주문 감소와 재개발, 임대료 부담이 겹치면서 기계가 멈추고 장인들이 외곽으로 이동하는 변화가 이어졌습니다. 골목의 형성 과정과 쇠퇴의 원인, 이주 과정에 감춰진 산업 구조, 앞으로 3~5년간 남겨야 할 과제를 차례로 짚습니다.

을지로 인쇄골목이 멈춘 이유와 장인들의 이주 비화
을지로 인쇄골목이 멈춘 이유와 장인들의 이주 비화

을지로 인쇄골목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

충무로와 을지로 인쇄 문화의 먼 기원으로는 조선 태종 때인 1403년 설치된 주자소가 거론됩니다. 주자소는 금속활자를 만들고 서적을 인쇄하던 관청이었지만, 오늘날의 인쇄골목이 그때부터 같은 장소에서 연속적으로 운영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현재와 가까운 산업 집적은 1910년대 을지로 일대에 영화관이 들어서면서 광고 전단과 상영 안내물을 제작하는 인쇄소가 모인 데서 출발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인쇄 수요가 늘자 업체들은 충무로와 인현동 방면으로 범위를 넓혔습니다.

 

1960년대에는 경제 성장과 함께 책, 포장지, 달력, 명함, 청첩장 주문이 늘었고 인쇄업체가 골목 안쪽까지 자리 잡았습니다. 1967년 세운상가가 문을 열고 주변 상권이 커지면서 기계 수리, 종이 유통, 활자, 제판, 제본 업체도 함께 모였습니다. 1970년대까지 장교동 일대가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1980년대 재개발과 업무용 빌딩 건설이 진행되자 상당수 업체가 충무로와 인현동으로 옮겼습니다. 따라서 을지로 인쇄골목은 한 번에 조성된 계획 산업단지가 아니라, 여러 차례의 철거와 이동을 거치며 형성된 생업 네트워크였습니다.

 

전성기에는 한 건의 주문이 접수되면 디자인 업체가 원고를 정리하고, 출력소와 인쇄소를 거쳐 코팅·박·도무송·제본 작업장으로 전달됐습니다. 오토바이나 손수레로 종이뭉치를 몇 골목만 이동시키면 다음 공정이 시작됐기 때문에 소량 주문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시 자료는 이 일대가 한때 서울 인쇄업의 3분의 2 이상, 전국 인쇄 관련 산업의 약 70%를 담당했다고 소개합니다. 수치는 특정 시점의 행정통계라기보다 산업계가 체감한 집중도를 나타내지만, 골목의 영향력이 전국 단위였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인쇄기 소리가 줄고 장인들이 떠난 복합 원인

을지로 인쇄골목의 쇠퇴를 재개발 하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이 홍보물과 달력 발주를 줄였고, 환율 상승으로 수입 인쇄기 리스료와 부품 가격이 뛰면서 영세 업체의 부담이 커졌습니다. 이후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확산되자 전화번호부, 상품 안내서, 종이 초대장처럼 반복 주문되던 품목이 감소했습니다. 디지털 인쇄기는 소량 제작 시간을 단축했지만, 고가 설비를 새로 들일 자금이 부족한 업체에는 또 다른 진입 장벽이 됐습니다.

 

쇠퇴의 더 깊은 원인은 공정마다 분리된 산업 구조에 있습니다. 골목의 경쟁력은 개별 인쇄소의 규모보다 10여 개 공정이 가까이 붙어 있다는 데서 나왔습니다. 한 업체가 폐업하거나 외곽으로 이전하면 남은 업체도 납기와 운송비 부담이 커지므로, 몇 곳의 이탈이 전체 생태계의 약화로 번집니다. 넓은 작업장과 화물차 진입이 필요한 업체는 경기도 파주·고양이나 서울 성수·영등포 등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거래처와 후가공 업체가 흩어지면 을지로에서 가능했던 당일 협업은 어려워집니다.

 

도시정비 정책도 이동을 재촉했습니다. 서울시는 2006년 세운재정비촉진지구를 지정한 뒤 개발 계획을 추진했으며, 철거와 사업 지연이 반복되는 동안 세입 상인들은 계약 불안과 임대료 상승을 함께 겪었습니다. 2020년에는 일몰 시점을 지난 152개 정비구역을 해제하고 공공산업거점 8곳과 공공임대상가 700호 이상을 공급하는 보전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 대책은 80여 차례의 상인·토지주·사업시행자 논의를 거쳐 마련됐지만, 실제 입주 시기와 면적, 장비 이전 비용이 업체마다 달라 모든 사업장을 흡수하는 해법은 아니었습니다.

을지로 인쇄골목 이주가 남긴 명암과 과제

인쇄업체의 외곽 이전에는 분명한 이점도 있습니다.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낮고 화물차 진입이 쉬운 지역에서는 대형 윤전기와 재단기를 설치할 공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파주출판도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출판·물류 시설을 집적하며 새로운 생산 거점으로 성장했고, 온라인 주문과 택배를 결합한 인쇄업체는 전국 고객을 상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낡은 건물의 전력 용량과 환기 문제에서 벗어난 점도 작업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됐습니다.

 

반면 생산시설이 넓어졌다고 해서 골목의 기능이 그대로 옮겨진 것은 아닙니다. 을지로에서는 500m 안팎의 거리에서 견적 수정, 색상 교정, 재단과 제본을 연달아 처리할 수 있었지만, 업체가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면 차량 운송과 일정 조정이 필요합니다. 소규모 디자이너와 독립출판 제작자는 수십 부에서 수백 부만 주문하는 경우가 많아 대형 공장의 표준화된 생산 방식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새로 이긴 것처럼 보이는 온라인 인쇄업도 가격 경쟁이 심하고 플랫폼 수수료, 택배비, 광고비를 부담해야 하므로 매출 증가가 곧 작업자의 수익 증가를 뜻하지 않습니다.

 

2026년 이후 3~5년은 을지로 인쇄골목의 보존 방식이 결정되는 시기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모든 낡은 작업장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 소량 인쇄, 후가공, 시제품 제작, 교육 기능을 묶은 공공임대 산업시설이 필요합니다. 서울시가 발표한 8개 산업거점과 700호 이상 공공임대상가는 수량보다 입주 업종의 연결성이 중요합니다. 인쇄소만 남기고 제판·박·접지·제본 업체가 빠지면 집적 효과가 회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향후 정책은 장인의 기술을 전시물로 보존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주문이 발생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서울시와 중구가 공공기관 인쇄물, 지역 문화행사, 독립출판 교육을 골목의 생산업체와 연계하면 기술 전승과 매출을 함께 확보할 수 있습니다. 임대료 지원도 1개 점포의 생존보다 연관 공정 5~10곳을 묶어 배치하는 방식이 효과적입니다. 오래된 인쇄기를 카페 장식으로 남기는 것보다 기획자와 기술자가 같은 장소에서 다시 일하도록 만드는 일이 산업 보존에 가깝습니다.

 

을지로 인쇄골목은 1910년대 영화 전단 제작에서 출발해 1960년대 상업 인쇄의 성장과 1980년대 업체 이동을 거치며 완성된 도심 제조업 집적지였습니다. 인쇄기 소리가 줄어든 배경에는 디지털 전환뿐 아니라 1997년 외환위기, 임대료 부담, 정비사업, 공정 업체의 연쇄 이탈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외곽 이전은 넓은 공간과 물류 효율을 제공했지만, 골목이 보유했던 빠른 협업과 소량 생산 능력까지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을지로 인쇄골목의 미래는 건물 몇 채를 남기는 데 있지 않으며, 흩어진 기술과 일감을 다시 연결하는 산업 정책에 달려 있습니다. 도시의 기억은 간판이 아니라 그 안에서 계속 작동하는 일로 보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