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동 책방골목은 한국전쟁기 부산으로 밀려든 피란민들이 책을 사고팔며 만든 지식 유통의 공간입니다. 오늘은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피란민의 지식 보고가 쇠락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교과서 한 권도 귀했던 시절에는 학생과 지식인이 배움을 이어 주는 통로였지만, 오늘날에는 책을 사는 손님보다 골목을 촬영하는 관광객이 많은 장소로 변했습니다. 전성기 70여 곳에 이르던 서점은 2026년 약 20곳 수준으로 줄었으며, 단순한 독서 인구 감소만으로는 이 변화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피란수도 부산에서 골목이 형성된 배경, 온라인 유통과 재개발이 만든 전환, 앞으로 3~5년 동안 필요한 보존 전략을 차례로 짚습니다.

보수동 책방골목이 피란민의 지식 보고가 된 까닭
보수동 책방골목의 뿌리는 1950년 한국전쟁과 임시수도 부산의 역사에 닿아 있습니다. 부산광역시 자료에 따르면 해방 전후 국제시장 입구에서 보수동 방면으로 노점이 생기기 시작했고, 전쟁기에 피란민이 몰려들면서 골목의 형태가 본격적으로 갖춰졌습니다. 이북에서 내려온 손정린 부부가 보수동 사거리 골목에서 미군 전투식량 상자 등을 진열대로 삼아 헌책을 팔았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일본인이 남기고 간 서적, 미군과 유엔군이 보던 영어책과 잡지, 피란민이 생계를 위해 내놓은 책이 한곳으로 모였습니다.
당시 보수동과 인근 대청동·광복동에는 피란 학교와 관공서, 다방이 밀집해 학생과 문화예술인의 책 수요가 컸습니다. 새 교과서를 구하기 힘든 학생은 쓰던 책을 팔고 필요한 참고서를 다시 샀으며, 형편이 어려운 지식인은 소장서를 맡긴 돈으로 생활을 이어 가기도 했습니다. 상인들은 1955년 보수서적상번영회를 조직했고, 1960년대에는 노점과 가판이 가건물 서점으로 바뀌었습니다. 1970~1980년대에는 약 70곳의 서점이 밀집해 신학기마다 책 보따리를 든 학생들이 좁은 골목을 가득 메웠습니다. 이곳은 책을 쌓아 둔 시장이 아니라 부족한 교육 자원을 재분배한 생활 기반 시설이었습니다.
온라인 유통과 재개발이 바꾼 보수동 책방골목
보수동 책방골목의 쇠퇴는 사람들이 갑자기 책을 읽지 않게 되면서 시작된 단일한 현상이 아닙니다. 부산광역시는 2000년대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등장을 침체의 주요 전환점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중고 서점은 제목과 가격, 책 상태를 검색한 뒤 택배로 받을 수 있지만, 보수동의 전통적 거래는 수천 권의 책을 직접 분류하고 손님과 대화하며 필요한 책을 찾아주는 방식에 의존했습니다. 검색 효율과 배송망을 갖춘 플랫폼이 시장을 전국 단위로 넓히는 동안 개별 헌책방은 고령화, 재고 관리, 온라인 등록 비용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습니다.
공간의 불안정성도 쇠퇴를 가속했습니다. 2020년에는 골목 초입의 서점 8곳이 건물 매각으로 퇴거 위기에 놓였으며, 해당 부지에는 지하 2층·지상 18층, 56세대 규모의 건축 계획이 추진됐습니다. 당시 남아 있던 서점은 약 40곳이었으므로 8곳의 이탈은 전체의 20%에 해당하는 충격이었습니다. 2020년 부산 미래유산 자료에는 번영회 등록 책방이 33곳으로 기록됐지만, 2026년 번영회가 밝힌 운영 점포는 약 20곳으로 감소했습니다. 전성기 70곳과 비교하면 약 71%가 사라진 셈입니다. 관광 명소가 되면 상권도 살아난다는 통념과 달리, 방문객 증가가 책 구매보다 사진 촬영과 통과형 관광에 머물면 매출 회복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문화유산 보존과 서점 생존 사이의 과제
행정기관도 골목의 문화적 가치를 일찍 인식했습니다. 부산시는 1999년 특화거리를 조성했고, 부산 중구는 2010년 문화관을 열었으며, 2014년에는 어린이도서관을 개관했습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2019년 부산 미래유산으로 선정되고 2020년 전통시장으로 등록됐습니다. 그러나 시설 정비와 축제가 곧바로 서점 매출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2026년 부산 공공도서관의 지역 서점 구매 비율은 99% 이상이지만, 책방골목에서 지역 서점으로 등록된 점포는 약 3곳에 불과했습니다. 고령 상인이 복잡한 등록과 납품 절차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이 지원 정책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향후 3~5년은 보수동 책방골목이 살아 있는 서점 거리로 남을지, 책방을 배경으로 한 관광지로 굳어질지를 가르는 시기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보존 정책은 간판과 벽화보다 임대차 안정, 공동 재고 검색망, 온라인 주문과 택배를 대신 처리하는 지원 인력에 우선순위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부산시와 중구가 골목 단위의 공동사업자를 구성해 20여 점포의 재고를 통합 검색하고, 공공도서관 납품에 참여하도록 행정 절차를 대행한다면 관광객을 실제 구매자로 전환할 기반이 생깁니다. 희귀본 감정, 헌책 수선, 피란기 출판물 해설처럼 온라인 플랫폼이 복제하기 힘든 서비스를 유료 프로그램으로 연결하는 방안도 필요합니다.
다만 문화재처럼 모든 점포와 영업 방식을 과거 모습으로 고정하는 접근도 해답은 아닙니다. 책 수요가 줄어드는 시장에서 세금과 행사비만 투입하면 자생력 없는 전시 공간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신규 독립서점과 카페의 진입을 막기보다 일정 면적을 책 판매에 사용하고 기존 상인과 공동 사업에 참여하도록 기준을 세우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골목의 핵심 자산은 낡은 외관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지식과 생계를 함께 순환시키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1950년대 피란민의 생존 시장에서 출발해 학생과 지식인의 배움을 지탱한 부산의 지식 보고로 성장했습니다. 1970~1980년대 약 70곳이던 서점이 2026년 약 20곳으로 줄어든 배경에는 온라인 중고 거래의 확산, 상인의 고령화, 재개발과 임대차 불안, 관광객 수와 책 매출이 분리되는 구조가 함께 놓여 있습니다. 문화관과 축제, 미래유산 지정은 골목의 이름을 알리는 데 기여했지만, 책방의 거래 능력과 수익을 회복시키지 못하면 보존 효과는 제한됩니다.
보수동 책방골목을 지키는 일은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남기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공동 온라인 판매망과 공공 납품 지원, 장기 임대 공간, 희귀서와 수선 기술을 활용한 수익 모델을 결합해야 합니다. 피란민들이 버려진 책에서 배움의 기회를 만들었듯이, 문화유산의 진정한 보존은 과거의 풍경을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가 수행했던 기능을 오늘의 방식으로 되살리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