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아파트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서 일제강점기부터 도시의 변화를 견뎌 온 공동주택입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의 최고령 아파트였던 충정아파트의 철거사 사라진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1937년 건축물대장에 등장한 이 건물은 현존하는 국내 최고령 철근콘크리트 아파트로 평가되지만, 2022년 철거 방침이 확정되며 존치의 가능성을 잃었습니다. 다만 철거 결정과 실제 철거는 같은 사건이 아니며, 2025년에도 시공사 선정과 주민 이주 문제로 사업이 지연됐습니다. 건립 당시의 도시 환경, 보존에서 철거로 바뀐 과정, 철거 이후 남겨야 할 기록이라는 세 축을 통해 충정아파트의 89년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충정아파트가 1937년 경성에 등장한 까닭
충정아파트는 서울시 건축물대장상 1937년 8월 29일 준공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일부 문헌에는 1932년 건립설도 나오지만, 2018년 도시사학회 학술지에 실린 연구는 당시 자료와 도시 변화를 검토해 1937년 신축된 철근콘크리트조 4층 건물로 정리했습니다. 처음 이름은 일본인 건축주 도요타 다네마쓰의 성을 딴 도요타아파트였으며, 한자로는 풍전아파트라고도 불렸습니다.
건물 안쪽에는 햇빛과 통풍을 끌어들이는 중정이 놓였고, 여러 세대가 복도를 공유하는 구조가 적용됐습니다. 단독주택이 중심이던 1930년대 경성에서 여러 가족이 한 건물의 설비와 동선을 나눠 쓰는 방식은 근대적 도시주거의 출현을 보여 줍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 숙소와 유엔 관련 시설로 이용됐고, 다시 주거 공간으로 돌아오면서 시대마다 쓰임이 달라졌습니다. 1970년대에는 유림아파트로 불렸으며 이후 충정아파트라는 이름이 정착했습니다.
현재 외관은 처음 모습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래 4층이던 건물 위에 1개 층이 더해졌고, 도로 확장과 증축, 내부 개조가 이어지면서 평면도 달라졌습니다. 이러한 변형은 원형 보존이라는 관점에서는 약점이지만, 도시의 요구에 맞춰 한 건물이 80년 넘게 사용된 과정을 보여 주는 생활사 자료이기도 합니다. 충정아파트의 가치는 완벽한 옛 건축물이라서가 아니라 식민지 도시, 전쟁, 산업화, 재개발을 한자리에서 통과했다는 데 있습니다.
충정아파트 보존안이 철거 결정으로 바뀐 전환점
충정아파트 일대는 1979년 9월 재개발구역으로 처음 결정됐고, 2009년 6월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변경됐습니다. 역세권의 높은 토지가치에도 사업이 40년 넘게 진행되지 못한 배경에는 복잡한 소유관계, 건물의 노후화, 보상 문제와 역사적 가치가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서울시는 한때 지역 유산으로 보존하는 방향을 세웠고, 2017년에는 현황과 활용 방안을 조사하는 연구도 발주했습니다.
보존 방침은 건물의 역사성만으로 유지되기 어려웠습니다. 실제 거주민에게 충정아파트는 문화유산이기 전에 누수, 균열, 좁은 통로와 화재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생활 공간이었습니다. 공동주택을 보존하려면 소유자와 세입자의 재산권, 안전 보강 비용, 이주 대책을 동시에 해결해야 합니다. 소수 전문가가 건축적 가치를 인정하더라도 수십 가구가 비용과 불편을 떠안는 구조에서는 보존 합의가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2022년 6월 마포로5구역 정비계획안을 수정 가결하며 충정아파트를 철거하고 같은 자리에 역사성을 담은 공개공지를 조성하도록 했습니다. 이어 2023년 6월 변경안에서는 연면적 약 4만2,000㎡, 지하 5층에서 지상 28층 규모의 복합건축물과 공동주택 192가구 계획이 제시됐습니다. 중정과 가족형 주호 등은 3차원 스캐닝을 비롯한 방식으로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철거는 낡았다는 이유 하나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안전, 주민 이해관계, 사업성, 문화유산 가치가 충돌한 결과였습니다.
충정아파트 철거 지연과 기억 공간의 과제
철거 방침이 정해졌다고 건물이 즉시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2025년 6월 보도 기준 충정아파트에는 33가구, 약 50명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서대문구 안전점검에서 최하위인 E등급을 받아 대피명령이 내려진 상태였습니다. 무주택 세입자 약 10가구에는 서울주택도시공사 임대주택이나 임시 거처를 제공하는 방안이 추진됐습니다. 문화유산 논쟁보다 먼저 해결돼야 할 문제는 주민이 위험한 건물에서 안전하게 이동하도록 보장하는 일입니다.
사업 진행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재개발 총사업비는 약 1,314억 원으로 제시됐지만 2025년 5월 첫 시공사 입찰에는 참여 업체가 없었습니다. 조합은 다음 공고에서 입찰보증금을 80억 원에서 40억 원으로 낮췄습니다. 충정로역에서 약 100m 떨어진 입지에도 192가구 규모는 대형 건설사가 선호하는 사업보다 작았고, 공사비 상승과 선별 수주가 사업 지연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2026년 철거 가능성이 거론됐으나 이는 사업시행인가와 이주가 진행된다는 조건이 붙은 전망이며, 철거 완료를 뜻하지 않습니다.
향후 3~5년에는 건물을 남길 것인가보다 철거 과정과 기억 공간을 얼마나 충실히 공개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3차원 스캔 자료가 행정기관 서버에만 보관된다면 시민이 체감하는 보존 효과는 제한됩니다. 원형 도면, 증축 흔적, 중정 구조, 주민 구술, 명칭 변천을 연결한 상설 전시가 마련돼야 기록보존이 철거를 정당화하는 장식에 머물지 않습니다. 새로 들어설 28층 건물과 192가구는 주거 공급이라는 이익을 만들지만, 89년에 걸친 장소의 기억을 원래 건축물과 같은 밀도로 전달할 수 없다는 한계도 분명합니다.
충정아파트는 1937년 도요타아파트로 출발해 미군 숙소와 전후 시설, 유림아파트를 거쳐 오늘의 이름을 얻었습니다. 1979년 재개발구역 지정 이후에도 소유관계와 보상, 안전, 보존 가치가 얽혀 장기간 존속했으며, 서울시는 2022년 철거와 공개공지 조성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2025년까지 주민 이주와 시공사 선정이 끝나지 않아 철거사는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충정아파트의 마지막 과제는 낡은 건물을 무조건 미화하는 것도, 개발을 진보로만 설명하는 것도 아닙니다. 도시의 역사는 건물을 허문 뒤 무엇을 세웠는지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과 공간을 얼마나 정확하게 기록했는가로 평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