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익선동 한옥마을이 서민 주거지에서 상업 공간이 된 이유

by 벨키오 2026. 7. 19.

익선동 한옥마을은 1920년대 서울 도심의 주택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조성된 서민 주거지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익선동 한옥마을이 서민 주거지에서 상업 공간이 된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늘날에는 한옥 카페와 음식점, 소품점이 밀집한 관광 상권으로 알려졌지만, 변화의 핵심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재개발 지연과 민간 자본의 유입, 한옥 보전 정책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낡은 주택을 철거하지 않고 다시 활용했다는 성과 뒤에는 거주민 감소와 생활 공간의 상업화라는 부담도 남았습니다. 익선동의 형성 과정, 상권으로 전환된 배경, 앞으로 필요한 균형을 차례로 짚어야 변화의 전체 모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익선동 한옥마을이 서민 주거지에서 상업 공간이 된 이유
익선동 한옥마을이 서민 주거지에서 상업 공간이 된 이유

익선동 한옥마을이 서민 주거지로 태어난 배경

익선동 일대는 1920년대부터 정세권, 신태종, 윤흥림과 같은 민간 건설업자들이 중형 필지를 나눈 뒤 도시형 한옥을 지어 분양하면서 집단 주거지로 형성됐습니다. 2022년 한국건축역사학회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봉익동과 익선동은 서울 도심의 집단 한옥 주거지 가운데 조성 시기가 이른 지역에 속합니다. 개발업자들은 1,000평 미만의 필지를 작은 대지로 분할하고, 토지만 팔거나 한옥을 완성해 판매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대규모 저택이 아니라 여러 가구가 가까이 모여 사는 고밀도 주거지가 만들어진 까닭입니다.

 

익선동 한옥은 북촌의 대형 한옥과 성격이 달랐습니다. 정부 정책주간지 K-공감은 이 지역 주택 대부분을 약 50㎡, 과거 단위로 15평 안팎의 서민용 도시형 한옥으로 설명합니다. 기와지붕과 안마당을 유지하면서도 유리창과 벽돌 같은 근대 재료를 받아들였으며, 자동차가 통과하기 어려운 1.5~2m 폭의 골목을 따라 집들이 촘촘히 들어섰습니다. 좁은 골목은 오늘날에는 독특한 경관으로 평가되지만, 당시에는 한정된 도심 토지를 여러 가구가 나누어 쓰기 위한 생활 조건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목재 부식, 단열 부족, 화재 위험과 같은 문제가 커졌습니다. 2002년 종로구의회 회의록에는 익선동에 약 330세대가 거주했으며, 내부 도로가 좁아 개별 건축이 어렵다는 행정 판단이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에는 한옥의 역사성보다 노후 주거지를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가 더 시급한 쟁점이었습니다. 익선동의 보존은 처음부터 합의된 목표가 아니라 개발과 존치 사이의 오랜 충돌 끝에 선택된 방향이었습니다.

 

재개발 지연이 익선동 상권 전환으로 이어진 과정

익선동은 1997년 종로구의 정비 검토를 거쳐 1999년 서울시에 도심재개발구역 지정을 신청했지만 한옥 보전 필요성을 이유로 한 차례 부결됐습니다. 2002년에는 31,121㎡ 부지에 지상 14층 규모 건물과 약 280세대의 아파트, 관광호텔, 오피스텔을 조성하는 계획도 논의됐습니다. 오래된 집을 전면 철거하고 업무·주거·관광 시설을 결합하는 방식이었으나, 소유자 간 이해관계와 보존 논쟁이 겹치면서 사업은 장기간 진척되지 못했습니다.

 

재개발이 멈춘 동안 한옥 가격과 임대 조건에 주목한 소규모 사업자들이 들어왔습니다. 2014년을 전후해 한옥의 서까래와 마당을 남긴 음식점, 카페, 공방이 골목 안에서 영업을 시작했고, 2017년에는 불과 2~3년 사이 방문객이 몰리는 장소로 소개될 만큼 상권의 성격이 빠르게 바뀌었습니다. 낡은 구조를 완전히 철거하지 않고 매장 디자인으로 활용한 방식은 대형 자본이 일괄 개발하는 재개발과 다른 경로를 만들었습니다. 한옥의 불편함이 희소한 체험 상품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서울한옥포털에 따르면 익선동에는 2018년 기준 음식점, 서비스업, 도소매업을 합쳐 약 330개의 상가가 밀집했습니다. 같은 해 서울시는 익선동 165번지 일대 31,121.5㎡를 한옥밀집지역으로 지정하고, 가로변 건축물 높이를 5층 또는 20m 이하로 제한했습니다. 대규모 상점과 프랜차이즈 입점을 막고 기존 필지 단위의 개발을 유도한 조치도 포함됐습니다. 주거 기능이 약해진 뒤 상권이 형성됐다는 통념과 달리, 실제로는 상업적 관심이 먼저 높아졌고 그 뒤에 보전 제도가 확정됐다는 시간 순서가 중요합니다.

익선동 상업화가 남긴 명암과 향후 과제

상업화의 가장 분명한 성과는 철거 위기에 놓였던 한옥 100여 채가 새로운 용도를 얻었다는 점입니다. 건물주는 노후 한옥을 수선할 경제적 이유를 확보했고, 방문객은 기와지붕과 좁은 골목, 작은 마당을 일상적인 음식점과 상점 안에서 경험하게 됐습니다. 익선동의 성공은 문화재처럼 건물을 비워 두는 보존이 아니라 사용하면서 유지하는 재생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2018년 지구단위계획은 공동 개발을 제한하고 기존 필지 구조를 존중함으로써 1920년대 도시 조직을 지킬 제도적 장치도 마련했습니다.

 

그늘도 선명합니다. 상가 약 330개가 좁은 구역에 집중되면서 골목은 생활 통로보다 소비와 촬영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2002년 약 330세대가 살던 주거지의 기억은 같은 숫자의 상점이 등장한 2018년 이후 더욱 희미해졌습니다. 두 수치는 조사 기준이 달라 직접 증감률로 비교할 수 없지만, 공간의 중심 기능이 주거에서 영업으로 이동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높은 방문 수요는 건물 수선 비용을 마련하는 데 유리하지만 임대료 상승과 업종 획일화를 부르고, 장사가 부진한 점포에는 한옥 유지비까지 부담시키는 양면성을 지닙니다.

 

2026년부터 향후 3~5년 동안 익선동의 경쟁력은 점포 수를 늘리는 방식보다 생활 기능을 얼마나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프랜차이즈와 대규모 점포를 제한한 현행 원칙을 유지하되, 주민용 편의시설과 소규모 문화 공간, 야간 소음 관리, 화재 대응 통로를 함께 확보해야 합니다. 한옥 외관만 남기고 내부를 비슷한 카페로 채우면 익선동은 다른 유행 상권과 구별되기 어렵습니다. 건축 연대와 이전 거주 방식, 골목별 역사를 매장 운영과 연결하는 해설 체계를 마련할 때 상업 수익이 지역의 역사 보전으로 환류될 수 있습니다.

 

익선동 한옥마을은 1920년대 서민을 위해 조성된 약 50㎡ 규모의 도시형 한옥 주거지에서 출발했습니다. 재개발이 지연된 사이 소규모 상점이 낡은 한옥을 새로운 소비 공간으로 바꾸었고, 서울시는 2018년 31,121.5㎡를 한옥밀집지역으로 관리하며 무분별한 철거를 막았습니다. 그 결과 한옥과 골목은 살아남았지만 주민의 생활 공간은 줄고 상업 시설의 밀도는 높아졌습니다. 익선동의 명암은 보존과 개발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보존 비용을 누가 부담하고 상업적 이익을 지역에 어떻게 돌려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오래된 공간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과거의 모습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생활할 권리까지 함께 보전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