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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역 증기기관차, 전쟁이 멈추자 남은 것은 총탄자국만이 아니었다

by 벨키오 2026. 7. 28.

장단역은 경기도 파주시 비무장지대 안에 있던 간이역입니다. 오늘은 장단역 증기기관차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이곳에 서 있던 증기기관차 한 대가 지금 임진각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1950년 12월 31일 밤, 이 기관차는 황해도 한포역까지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다 남쪽으로 되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도착지가 하필 장단역이었습니다. 미군은 북한군이 기관차를 다시 쓰지 못하게 그 자리에서 총격을 가했습니다. 몸통에는 1,020여 개의 총탄 자국이 남았습니다. 반세기 넘게 멈춰 있던 이 철마는 2006년에야 5km를 다시 움직였습니다. 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존 처리를 받기 위한 이동이었습니다. 이 궤도 위에는 세 개의 시간이 겹쳐 있습니다. 총성이 울린 전쟁의 순간, 침묵이 이어진 분단의 반세기, 그리고 다시 연결을 시도했던 짧은 희망입니다.

장단역 증기기관차, 전쟁이 멈추자 남은 것은 총탄자국만이 아니었다
장단역 증기기관차, 전쟁이 멈추자 남은 것은 총탄자국만이 아니었다

장단역, 기관차를 멈춰 세운 진짜 총성

탈선이 아니라 총격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기관차를 두고 폭격에 탈선된 열차라고 기억합니다. 하지만 기관사 한준기의 증언은 다릅니다. 1950년 12월 31일, 그는 연합군 군수물자를 평양 방면으로 옮기던 중이었습니다.

중공군이 황해도 한포역까지 남하하자 화차를 돌려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장단역이었습니다. 이곳은 1906년 개통한 경의선의 중간역이었습니다.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518.5km 복선철도의 일부였던 셈입니다.

 

기관차가 멈추자 연합군 차량에서 미군 20여 명이 내려섰습니다. 이들은 기관차를 향해 총을 난사했습니다. 인민군과 중공군이 다시 쓰지 못하게 만들려는 목적이었습니다. 화구가 터지며 불길이 일었습니다.

통념은 전투 중 피격이지만, 실제로는 후퇴 이후에 벌어진 파괴였습니다. 순서가 다르면 의미도 달라집니다. 이것은 우연한 전투의 상처가 아니라, 무기를 없애려는 의도된 행위였습니다.

 

이 기관차의 이름은 마터 2형 10호였습니다. 산을 뜻하는 영어 발음을 따서 마터라 불렸습니다. 산악 지형이 많은 이북 지역의 화물 수송에 주로 쓰이던 기종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직접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찢긴 철판과 뒤틀린 바퀴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사진 한 장보다 이 흔적이 더 정확한 증언입니다.

임진각으로 옮겨진 철마가 감춘 사정

1953년 정전협정 이후 군사분계선이 그어지면서 이 기관차는 비무장지대 안에 갇혔습니다.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자리였습니다. 총탄과 포탄 자국은 그대로 방치되었습니다. 1971년에 촬영된 사진에는 녹슨 채 풀숲에 파묻힌 기관차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바퀴는 이미 뒤틀려 있었습니다. 몸체에는 1,020여 발의 총탄 자국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문화재청은 이 기관차를 등록문화재 제78호로 지정했습니다. 상처 자체가 하나의 기록이었습니다.

 

2006년 11월 20일, 기관차는 처음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국방부와 유엔사, 파주시, 포스코 관계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된 이송이었습니다. 105톤에 이르는 육중한 몸체를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20m 트레일러에 실었습니다. 반세기 만에 5km를 이동한 셈입니다.

이후 포스코 기술진이 1년간 보존 처리를 맡았습니다. 지금은 임진각에서 북쪽을 향해 서 있습니다. 그 앞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동판이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곳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민간인 통제선을 넘으려면 사전 신고와 국방부 허가가 필요합니다. 상징은 활짝 열려 있지만, 실제 접근은 여전히 닫혀 있습니다. 화해의 상징이 통제의 경계 위에 서 있는 이유입니다.

 

녹슨 표면은 붉은빛과 검은빛이 뒤섞여 있습니다. 임진각을 찾은 방문객 대부분은 이 앞에서 말없이 멈춰 섭니다. 총탄 자국에 손끝을 대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감상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되는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경의선 철마가 다시 달리지 못하는 진짜 상대

2000년 6월 15일,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되면서 끊어진 철길을 다시 잇자는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해 7월 31일 장관급 회담에서 경의선 연결에 합의했습니다. 9월 18일에는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2002년 4월 11일, 도라산역이 새로 문을 열었습니다. 같은 해 12월, 남측 구간 시설 공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2003년 6월 14일에는 남북 철도가 완전히 이어졌습니다. 다만 열차가 실제로 오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7년 5월 17일, 마침내 시험 운행이 이루어졌습니다. 문산역을 출발한 열차는 도라산역과 휴전선을 넘어 판문역과 손하역을 지나 개성역에 도착했습니다. 남측 100명, 북측 50명이 탑승했습니다. 디젤전기기관차 한 량과 새마을호 객차 네 량을 합친 여섯 량짜리 편성이었습니다.

같은 날 동해선에서는 북측 열차가 금강산역에서 제진역까지 넘어왔습니다. 그해 12월 11일부터는 개성공단행 화물열차가 정기적으로 다녔습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008년 11월 28일, 북측의 일방적 통보로 운행이 멈췄습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열차는 다시 국경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로와 신호 체계는 이미 갖춰져 있습니다. 정작 열차를 막는 것은 궤도의 결함이 아니라 남북 관계의 냉기입니다. 철마가 다투는 상대는 녹슨 레일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의 부재인 셈입니다.

앞으로 3~5년 안에 상황이 크게 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선로 보수나 신호 개량 같은 기술적 조건은 이미 충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관건은 결국 남북 간 합의의 재개 여부입니다. 궤도는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장단역 증기기관차는 총격에 의해 멈춰 섰고, 반세기 동안 비무장지대에 방치되었습니다. 2006년에야 임진각으로 옮겨져 보존 처리를 받았습니다. 2000년대 들어 경의선 철도는 다시 이어졌지만, 2008년 이후 국경을 넘는 열차는 없습니다. 문산에서 임진강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2020년에 전철화되었지만, 그 너머로 넘어가는 열차는 여전히 없습니다. 궤도는 남아 있어도, 그 위를 달리는 것은 결국 관계입니다. 철마가 멈춘 자리는 기술이 아니라 신뢰가 부족했던 자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