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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를 걷어내고 공원으로, 여의도공원의 탄생

by 벨키오 2026. 7. 10.

서울 여의도에 가면 높은 빌딩 숲 사이로 초록빛 나무가 가득한 여의도공원이 있어요. 오늘은 여의도공원이 변천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게요.

점심시간이면 근처 회사원들이 나와 산책을 하고, 봄이면 벚꽃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죠. 연못 옆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자전거를 타고 산책로를 한 바퀴 도는 사람들의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공원이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나무 한 그루 없이 아스팔트로 뒤덮인 거대한 광장이었고, 한때는 수십만 명이 한꺼번에 모여 행사를 열던 곳이었어요. 지금 산책하는 사람들 발밑에는, 예전에 거대한 군사 퍼레이드가 지나가고 대규모 종교 집회가 열렸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셈이에요. 오늘은 여의도공원이 되기 전, '여의도광장'이라 불리던 시절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드릴게요.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공원으로, 여의도공원의 탄생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공원으로, 여의도공원의 탄생

비행장에서 광장으로, 여의도의 놀라운 변신

지금은 금융회사 빌딩이 빽빽하게 들어선 여의도지만, 원래 이곳은 한강 가운데 있는 모래가 많은 섬이었어요.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살지도 않았고, 여름철 홍수가 나면 물에 잠기기도 하는 그런 섬이었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였던 1916년, 일본이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장을 만들었답니다. 활주로를 깔고 비행기를 세워두는 격납고도 지었어요. 표면적으로는 민간 비행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발판으로 쓰려는 목적이 컸다고 해요. 1917년에는 외국인 조종사의 곡예비행을 보려고 당시 서울 인구의 사분의 일에 해당하는 오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만큼, 비행기는 그 시절 사람들에게 아주 신기한 구경거리였답니다. 이후 여의도 비행장은 오랜 시간 동안 군사용, 그리고 민간 공항으로 함께 쓰였어요. 1958년에 지금의 김포공항이 새로 생기면서 민간 비행기들은 그쪽으로 옮겨갔고, 여의도는 공군이 쓰는 기지로 남아 있었답니다.

 

시간이 흘러 1971년, 공군 부대가 성남에 있는 새로운 기지로 옮겨가면서 여의도 비행장은 문을 닫게 되었어요. 그러자 정부는 이 넓은 땅을 그냥 두지 않고 아주 큰 광장으로 만들기로 결정했어요. 공사는 딱 7개월 만에 끝났고, 1971년 9월 마침내 거대한 광장이 완성되었답니다. 처음 이름은 '5·16광장'이었어요. 이 광장은 단순한 쉼터가 아니라, 언제라도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도록 활주로처럼 튼튼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이 특이해요. 평소에는 시민들이 이용하는 광장으로 쓰이지만, 나라에 위급한 일이 생기면 다시 비행장으로 쓸 수 있도록 계획한 것이었어요. 그만큼 이 시기에는 안보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55만 명이 모였던, 거대한 광장의 시대

완성된 5·16광장, 나중에 이름이 바뀐 여의도광장의 크기는 정말 어마어마했어요. 여의도 전체 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넓었고, 한꺼번에 수십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였다고 해요. 실제로 한 번에 오십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모인 행사가 열리기도 했을 정도로 당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큰 광장이었답니다. 여섯 개 차로가 있는 넓은 도로와 함께, 향나무 같은 나무 수천 그루도 심어져 있어서 완전히 삭막하지만은 않았어요.

 

이 넓은 광장에서는 정말 다양한 일들이 벌어졌어요. 해마다 10월 1일 국군의 날이 되면 이곳에서 육군, 해군, 공군이 참여하는 커다란 군사 행진이 펼쳐졌어요. 탱크와 비행기가 지나가고, 많은 시민들이 나와서 이 모습을 구경했답니다. 또 종교 행사도 자주 열렸는데, 외국에서 온 유명한 목사님의 전도 집회에 하루 삼십만 명씩, 총 백오십만 명이 모인 적도 있었대요. 이때는 광장 남쪽에 수천 명이 한꺼번에 이용할 수 있는 식당과 화장실까지 임시로 만들어졌고, 밤에는 수십 개의 큰 조명이 광장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어요. 교황님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이곳에서 미사를 드렸을 정도로, 여의도광장은 온 나라 사람들이 모이는 만남의 장소였어요.

 

행사가 없는 평범한 날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에는 마음껏 뛰어놀 만한 넓은 공간이 많지 않았어요. 지금처럼 놀이공원이나 큰 테마파크가 여기저기 있던 시절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이 커다란 아스팔트 광장은 시민들에게 최고의 휴식 공간이 되어주었어요. 주말이면 가족들이 자전거를 타러 나오고, 아이들은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신나게 달렸어요. 광장 주변에는 자전거와 롤러스케이트를 빌려주는 가게도 많이 생겨났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딱딱한 시멘트 바닥 위에서 노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그때는 이곳이 서울에서 손꼽히는 인기 나들이 장소였던 거예요. 명절이 되면 고향 가는 버스표를 미리 사는 임시 매표소가 이곳에 차려지기도 하고, 마라톤 대회나 자전거 대회 같은 행사도 자주 열렸어요. 이렇게 여의도광장은 국가의 큰 행사부터 시민들의 소소한 나들이까지, 정말 다양한 얼굴을 가진 공간이었답니다.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공원으로, 여의도공원의 탄생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면서, 사람들은 이 거대한 광장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는 예전보다 훨씬 자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변해갔어요. 커다란 행사나 집회를 위해 만들어졌던 딱딱한 아스팔트 광장보다는, 시민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초록빛 공원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답니다. 예전 시대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넓은 광장을, 이제는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나갔던 거예요. 뉴욕의 센트럴파크나 런던의 하이드파크처럼, 도시 한가운데에 자연을 품은 공간을 만들자는 계획이 세워졌어요.

 

이렇게 해서 1997년 4월, 마침내 여의도광장을 공원으로 바꾸는 큰 공사가 시작되었어요. 수십 년 동안 단단하게 굳어 있던 아스팔트를 걷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답니다. 오랫동안 자전거 대여점을 운영하던 상인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걱정이 많아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고 해요. 그만큼 이곳은 많은 사람들의 삶과 추억이 얽혀 있는 장소였던 것이죠. 그럼에도 공사는 계속 진행되었고, 아스팔트를 걷어낸 자리에는 새로운 흙을 채우고 나무와 꽃을 심었어요. 소나무를 비롯해 백 가지가 넘는 다양한 나무들이 이곳에 새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답니다. 공사는 계속 진행되어 일부 구역은 1998년 가을부터 먼저 시민들에게 열렸고, 1999년 1월, 드디어 '여의도공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완전히 문을 열게 되었어요.

 

새로 태어난 여의도공원은 크게 네 가지 공간으로 나뉘어 있어요. 연못과 나무가 어우러진 '자연생태의 숲', 넓은 마당과 농구장이 있는 '문화의 마당', 산책하기 좋은 '잔디마당', 그리고 전통 정자가 있는 '한국전통의 숲'이랍니다. 예전 광장의 흔적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에요. 자전거를 타던 길은 지금도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로 남아 있어서, 옛날처럼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공원 한쪽에는 오래전 광복을 맞아 임시정부 인사들이 타고 돌아왔던 비행기 모형도 전시되어 있어서, 이곳이 원래 비행장이었다는 사실을 살짝 떠올리게 해준답니다.

 

이제 여의도공원은 커다란 집회나 군사 행사가 열리던 곳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 매일 찾아와 여유를 즐기는 편안한 쉼터가 되었어요. 점심시간이면 근처 회사원들이 나와 벤치에 앉아 있고, 주말이면 가족들이 돗자리를 펴고 소풍을 즐긴답니다. 봄이 되면 벚꽃이 활짝 피어서, 서울에서 손꼽히는 벚꽃 명소로도 유명해졌어요.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에는 여의도역 주변이 사람들로 가득 찰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든답니다. 학생들이 졸업 사진을 찍으러 찾아오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서, 봄가을이면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어요. 비행장에서 거대한 광장으로, 그리고 다시 초록빛 공원으로 바뀌어 온 여의도의 역사를 알고 나면, 다음에 이곳을 걸을 때 조금은 다른 마음이 들지도 몰라요. 지금 우리가 편안하게 걷고 있는 그 길이, 한때는 비행기가 뜨고 내리던 활주로였고 또 수십만 명이 모여 함성을 지르던 광장이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게 느껴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