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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마을 재개발, 마지막 달동네의 기억은 어떻게 남나

by 벨키오 2026. 7. 18.

백사마을 재개발은 낡은 주택을 철거하고 아파트를 세우는 사업에 그치지 않습니다.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불암산 자락에 형성된 이 마을은 급격한 도시개발 과정에서 밀려난 철거민의 정착지이자, 반세기 넘게 이어진 서민 주거사의 현장입니다. 2009년 정비구역 지정 이후 사업 중단과 계획 변경을 거친 끝에 3,178세대 규모의 공동주택 건설이 확정됐지만, 기존 골목과 생활 흔적을 어떤 방식으로 기록할지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았습니다. 백사마을의 형성 배경, 재개발 계획의 전환 과정, 철거 이후 보존 기록의 의미를 차례로 짚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백사마을 재개발, 마지막 달동네의 기억은 어떻게 남나
백사마을 재개발, 마지막 달동네의 기억은 어떻게 남나

도심 철거민이 불암산 자락에 만든 백사마을

백사마을은 현재의 노원구 중계본동 30-3번지, 과거 주소로는 산 104번지 일대에 자리합니다. ‘백사’라는 이름도 숫자 104를 한글로 읽은 데서 유래했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아카이브는 이곳을 서울 시역의 확대와 도시 서민의 공간구조를 보여주는 역사 현장으로 설명합니다. 1960년대 후반 청계천 주변과 도심 정비구역에서 이주한 철거민들이 불암산 비탈에 정착하면서 마을의 골격이 형성됐습니다.

초기 주민들은 반듯하게 구획된 택지보다 경사진 땅과 좁은 통로에 맞춰 집을 지었습니다. 골목은 차량 통행보다 사람의 이동을 중심으로 연결됐고, 작은 마당과 연탄 창고, 공동 수도 같은 시설이 생활 반경을 결정했습니다. 이러한 공간은 열악한 기반시설의 결과였지만, 이웃 간 돌봄과 물품 교환이 일어나는 생활망이기도 했습니다. 낡은 건축물을 그대로 미화할 수는 없으나, 주택의 형태만 기록해서는 마을이 작동한 방식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백사마을이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린 까닭은 가난한 풍경이 오래 남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대규모 택지개발과 아파트 공급으로 주변 중계동의 모습이 빠르게 바뀌는 동안에도, 이곳에는 산업화 시기 강제 이주와 자력 건축의 흔적이 비교적 선명하게 유지됐습니다. 따라서 백사마을의 역사적 가치는 판잣집 자체보다 누가 어떤 정책으로 이곳에 왔으며, 부족한 기반시설을 어떤 생활 방식으로 보완했는지에 놓입니다.

16년간 표류한 재개발은 통합 정비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백사마을은 2009년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됐고 같은 해 한국토지주택공사인 LH가 사업시행자로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저층 주거지 일부를 남기는 주거지보전계획이 반영되면서 사업성이 낮아졌고, LH는 2016년 1월 사업을 포기했습니다. 주민 요청에 따라 서울주택도시공사인 SH가 2017년 사업시행자로 지정됐으며, 2019년 정비계획 변경과 2021년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거쳐 사업을 다시 진행했습니다.

 

2024년 관리처분계획 당시 계획은 18만7,979㎡ 부지에 최고 20층, 2,437세대를 짓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분양주택은 1,953세대, 임대주택은 484세대로 예정됐고, 별도 획지에는 기존 골목과 지형을 활용한 저층 임대주택을 조성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분양과 임대 공간을 물리적으로 나누면 사회적 경계가 굳어질 수 있고, 비탈진 골목을 보존한 주택은 사생활과 관리 효율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보존이라는 명분이 실제 거주자의 주거 품질과 충돌한 사례였습니다.

 

서울시는 2022년 4월부터 주민과 전문가를 상대로 150회 이상 협의를 진행한 뒤, 보존 용지와 공동주택 용지를 통합하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2025년 최종 고시된 계획은 지하 4층부터 지상 35층까지 26개 동, 총 3,178세대로 확대됐습니다. 종전보다 741세대가 증가했고,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의 획지를 구분하지 않는 소셜믹스 방식이 도입됐습니다. 공급 확대와 사업성 개선에는 유리하지만, 높아진 밀도와 대단지 중심의 공간이 과거 마을의 작은 생활 단위를 대신할 수 있는지는 입주 이후에도 검증해야 합니다.

사라지는 골목보다 생활의 관계를 기록해야 합니다

백사마을의 보존은 건물 몇 채를 남기는 방식에서 기록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104마을’ 자료를 통해 위치와 경관, 도시정책의 변화, 주민 생활상을 사진과 문서로 축적해 왔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철거 이전의 모습을 복원하는 자료이면서, 서울이 주거 빈곤을 외곽으로 이동시킨 과정을 검토하는 공공 기록입니다. 집의 평면도와 골목 폭뿐 아니라 연탄 배달 경로, 시장 이용 방식, 주민 조직과 이주 과정까지 남겨야 장소의 의미가 입체적으로 보존됩니다.

 

구조적으로 보면 재개발과 보존의 갈등에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겹쳐 있습니다. 토지등소유자는 사업성과 분담금을 중시하고, 세입자는 이주비와 재정착 조건에 민감하며, 공공기관은 주택 공급량과 사업 기간을 관리해야 합니다. 문화적 보존을 강조하는 집단은 장소의 원형을 요구하지만, 장기간 사업이 지연될수록 남아 있는 주민은 화재·붕괴·단열 부족 같은 위험을 더 오래 감당합니다. 기록 보존이 물리적 정비를 늦추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재개발 역시 기록 생산을 철거 직전의 사진 촬영으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향후 3~5년 동안 백사마을은 공사 진행과 기록 공개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단계에 들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서울시는 2025년 12월 기공식을 열었고, 2026년 본공사 착공과 2029년 준공·입주를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3,178세대의 새 단지가 완성되는 시점에 과거 마을의 물리적 흔적은 대부분 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2026년부터 2029년 사이에는 구술 기록의 공개 범위, 원주민 재정착 현황, 임대·분양 혼합 배치의 실제 효과를 함께 기록해야 합니다.

 

백사마을 재개발은 1960년대 후반 철거민 정착지에서 출발해 2009년 정비구역 지정, 2016년 LH 사업 포기, 2017년 SH 참여, 2025년 3,178세대 계획 확정으로 이어진 장기 사업입니다. 낡은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공급을 늘리는 일은 필요하지만, 아파트 단지의 완공만으로 도시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 주민이 실제로 돌아올 수 있는지,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이 공간적으로 통합되는지, 마을의 생활사가 누구의 언어로 기록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백사마을의 보존은 가난했던 풍경을 전시하는 일이 아니라, 도시개발의 비용을 감당한 사람들의 삶을 공적 기억으로 남기는 작업이어야 합니다. 사진과 건축 기록에 주민의 구술, 이주 과정, 재정착 결과를 결합할 때 재개발은 과거를 지우는 사업에서 도시가 자신의 선택을 설명하는 과정으로 바뀝니다. 오래된 집은 사라질 수 있지만, 그곳에서 드러난 정책의 책임까지 철거되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