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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간 굳게 닫혀 있던 비밀의 땅, 마포 석유비축기지 이야기

by 벨키오 2026. 7. 14.

일반 시민은 근처에 다가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던 곳이 있습니다. 오늘은 41년간 굳게 닫혀 있던 비밀의 땅, 마포 석유비축기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담장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할 수는 있어도, 정작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던 공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서울 마포구 매봉산 자락에 있던 마포 석유비축기지가, 어떻게 지금의 문화비축기지로 다시 태어났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41년간 굳게 닫혀 있던 비밀의 땅, 마포 석유비축기지 이야기
41년간 굳게 닫혀 있던 비밀의 땅, 마포 석유비축기지 이야기

41년간 접근이 금지된 1급 보안시설

이야기는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해 중동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지면서 원유 가격이 크게 뛰어올랐는데, 이를 1차 석유파동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석유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정부는 앞으로 비슷한 비상사태가 다시 벌어질 경우를 대비해 서울 안에 석유를 미리 저장해 두는 시설을 짓기로 했습니다. 당시 세계적으로 몇 년 뒤 2차 석유파동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기 때문에, 서울 시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석유를 어느 정도 비축해 두려는 목적이 컸습니다. 이렇게 해서 1976년부터 1978년까지 마포구 매봉산 인근에 다섯 개의 대형 석유 탱크가 세워졌습니다. 이 탱크들은 저마다 높이 15미터, 지름 15미터에서 38미터에 이르는 큰 규모였고, 아파트 5층 높이와 비슷한 크기였습니다. 이곳에는 당시 서울 시민들이 한 달 정도 쓸 수 있는 양인 6,907만 리터의 석유가 보관되었습니다.

 

이 시설은 국가 비상용 석유를 다루는 만큼 1급 보안시설로 분류되었고,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인근 주민들조차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시설이 세워진 뒤 41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곳은 철저히 외부와 차단된 채 관리되었고, 매봉산 자락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사실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시설은 1970년대 정부가 국가 비상용 석유 확보라는 목적으로 세운 만큼, 운영과 관리 전반에서 군사 시설에 준하는 엄격한 통제가 이루어졌습니다. 다섯 개의 탱크에는 저마다 다른 종류의 석유가 나뉘어 보관되었는데, 등유나 경유, 휘발유처럼 쓰임새가 다른 석유를 각각 다른 탱크에 담아 관리했습니다. 탱크마다 유량을 계측하는 작업도 필요했는데, 탱크 외벽을 따라 놓인 철제 계단을 오르내리며 직원들이 직접 줄자로 유량을 재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만큼 마포 석유비축기지는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베일에 싸인 공간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2002 한일월드컵과 안전 문제로 인한 폐쇄

이렇게 비밀리에 운영되던 석유비축기지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준비하던 시기였습니다.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마포 석유비축기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상암동에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새로 짓게 되었는데, 대량의 석유를 저장한 시설이 경기장 인근 500미터 안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안전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수만 명의 관중이 경기를 보러 모이는 대형 경기장 바로 옆에,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난다면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석유 저장 시설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정부는 탱크에 있던 석유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2000년 12월 마포 석유비축기지를 완전히 폐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폐쇄된 뒤에도 이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뚜렷한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탱크들만 덩그러니 남은 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곳은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유휴지로 남아 있었습니다. 폐쇄 직후에는 위험 시설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만큼, 곧바로 다른 용도로 쓰기보다는 오랜 기간 활용 방안을 검토하는 데에만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그러다 2013년, 서울시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이 부지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모으는 공모전을 열었고, 이 공모전을 계기로 국제현상설계공모를 거쳐 문화예술 공간으로 다시 살리는 방향이 확정되었습니다. 석유를 저장하던 탱크를 완전히 철거하는 대신, 탱크의 형태와 구조를 최대한 살리면서 그 안에 문화적인 쓰임새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설계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붙여진 이름이 바로 문화비축기지인데, 석유 대신 문화를 저장하고 채워 나가는 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석유에서 문화로, 문화비축기지의 재탄생

오랜 설계와 공사 과정을 거쳐, 마포 석유비축기지는 2017년 9월 1일 문화비축기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시민들에게 문을 열었습니다. 기존에 있던 다섯 개의 탱크 가운데 하나였던 T3는 탱크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해 놓았고, 나머지 탱크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쓰임새를 얻었습니다. 등유를 보관했던 T4 탱크는 철제 외벽과 파이프를 그대로 남긴 채 공연과 전시가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이 되었고, 휘발유를 보관했던 T2 탱크는 벽체와 지붕을 유리로 새로 얹어 매봉산의 암반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유리 파빌리온으로 바뀌었습니다. 경유를 저장했던 탱크는 지붕을 걷어 내고 하늘을 향해 열어 두어, 위쪽은 야외무대로 아래쪽은 실내 공연장으로 쓰이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석유비축기지가 문화비축기지로 바뀌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전시실도 마련되어, 당시 직원들이 쓰던 헬멧과 작업복 같은 물건들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이 전시실을 둘러본 사람들은 콘크리트 옹벽과 매봉산의 암반, 절개지까지 함께 살펴보며 이곳이 원래 어떤 시설이었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T5 탱크 내부에는 영사기가 설치되어 있어, 탱크 벽면을 따라 360도로 펼쳐지는 영상을 통해 석유비축기지가 세워진 배경부터 문화비축기지로 바뀌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탱크 외벽 틈에서 자라난 오동나무입니다. 폐쇄 당시에는 없었던 나무인데, 시설이 문을 닫은 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이 저절로 자라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험 시설로 운영되던 시절에는 있을 수 없었던 나무 한 그루가, 지금은 이곳이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는지, 또 그 시간이 지나 어떻게 자연과 다시 어우러지게 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작은 상징처럼 남아 있습니다.

 

기존 다섯 개의 탱크와 별도로, T1과 T2 탱크를 해체하면서 나온 철판을 활용해 T6이라는 새로운 건물도 지어졌습니다. 이 건물은 문화비축기지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카페와 강의실, 회의실을 비롯해 생태 도서관인 에코라운지 같은 시설을 갖추고 있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건물 2층에는 둥근 하늘을 그대로 올려다볼 수 있는 옥상마루도 마련되어 있어, 문화비축기지를 찾은 사람들이 잠시 앉아 쉬어 가기 좋은 자리로 꼽힙니다. 건물 1층은 음료를 파는 카페로도 운영되고 있어, 산책 중 잠시 쉬어 가기에도 알맞습니다. 문화비축기지는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걸어서 갈 수 있으며, 서울월드컵경기장과도 가까워 경기 관람 전후에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실내 전시 공간은 정해진 시간에만 문을 열지만, 야외 공간은 별도 요금 없이 언제든 둘러볼 수 있어 부담 없이 찾아가기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문을 연 문화비축기지는 201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본상과 한국건축가협회상, 대한민국공공건축상을 받았고, 2019년에는 서울시건축상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탱크 원형이 온전히 남은 T3를 포함해 문화비축기지 전체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는데, 이는 산업화 시대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런 인기와 관심이 이어지면서 최근에는 운영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2025년 4월부터는 탱크 내부를 상시 관람하는 대신 사용수익허가시설로 운영 방식이 바뀌어, 방문 전에 개방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41년 동안 시민들의 발길이 닿지 않던 비밀스러운 산업 시설이, 이제는 누구나 찾아와 쉬고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완전히 다른 얼굴을 갖게 된 셈입니다. 언젠가 서울월드컵경기장 인근을 지날 일이 있다면, 잠시 들러 이 오래된 탱크들 사이를 천천히 걸어 보는 것도 뜻깊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